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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화. 厚德, 군자는 덕으로서 재물을 얻는다
    그는 조용히 물러나 산동성으로 가서 농사를 지어 막대한 부를 일궜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발해만 쪽으로 이주하여 물류업으로 엄청난 부를 일구고는 또 나눠주고 은둔하였다고 하는 데 그는 정치적, 군사적, 재력적으로 인생의 3모작을 성공한 보기 드문 대장부(大丈夫)라 할 수 있다. 범려의 성공 이면에는 젊은 시절의 천하를 주유하면 터득한 경험, 오자서, 월왕 구천, 오왕 부차, 손무, 문성, 백비 등 당대 출중한 인물들과의 직,간접적 교류를 통한 동기부여, 정보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있었고, 계연이라는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 사물에 대한 안목에다 확고한 자기철학이 있었기에 삼취삼산(三聚三散)이라는 멋들어진 고사와 더불어 厚德(군자는 덕으로서 재물을 얻는다)의 표상이 된 것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성인(聖人)하면 석가모니와 공자를 들지만 이 사람 없이 공자를 생각할 수 없는 이가 바로 자공(子貢)이다. 가난한 공자가 어떻게 천하를 주유하였으면 제후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엄격한 신분사회인 당시를 생각하면 자공의 부와 명성으로 이루어 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공은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일군 후 춘추시대의 제후들이 앞다투어 교류하기를 청하는 그야말로 대부호였다.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예를 표하는 분정향례라는 제후급 의전을 받으면서 공자사후 그의 언행을 정리한 논어나 유가를 학파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는 그의 富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진시황을 만들어낸 여불위 또한 전국시대의 혼란과 전쟁을 활용한 장사로 엄청난 부를 일구어 혼란했던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중요한 기회를 만든 장본인이다. 여불위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실천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 3화 예고 : 전국시대 천하 치생(治生)의 비조(鼻祖) '백규(白圭)'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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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4
  • 1화.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을 통해 본 '부의 법칙'
    1. 厚德, 1년을 잘 살려면 농사를 짓고 10년을 잘 사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잘 살려면 덕을 베풀어라. (厚德 : 두터운 심덕(心德). 또는 두터운 덕행(德行). ‘두터운 덕’으로 순화(醇化))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총 130장으로 백이숙제의 고사부터 자서전 성격의 태사공자서 까지 수많은 인물들을 망라하여 기록해 놓았다. 화식열전은 129장째로 재산을 뜻하는 화(貨)와 불린다는 의미의 식(殖)을 합쳐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상업과 공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인물들의 삶과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어떻게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원리를 찾아서 부를 일구고 누렸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아는 인물들이 다수이나 의외의 경우도 있는바 사마천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고 오늘날 중국의 도약과 성장이 굳건한 뿌리에 기인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간략하게나마 소개 해 볼까 한다. 먼저 낚시꾼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강태공은 젊은 날부터 다양한 상업 활동에 종사했고, 천하를 떠돌며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체험하여 오늘날 산동반도인 제나라 재상에 봉해지자 지형과 풍토에 맞는 상공업을 장려함으로써 제나라를 부유한 국가로 만들 수 있었다. 제나라초기의 황폐한 발해만의 바닷가를 바닷소금을 제조해 내륙지방에 팔고, 부녀자들을 모아 길쌈을 하게 해 방직업을 일으켜 춘추전국시대의 초대 패자(霸者)가 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제나라가 춘추전국시대의 최초의 패자이자 진나라 통일전까지 절대강자의 지위를 놓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로 관중의 富民富國정책을 들 수 있다. 사마천의 본보기이기도 한 관중은 젊어서부터 장사를 해서 망하기도 하고 여러차례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절친 포숙아의 양보와 추천으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비범함과 특출한 역량은 낭중지추가 되어 정치군사적 재능과 상공업중심의 과감한 정책실행을 도모해 나가는데 근간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백성이 부유해야 국가가 부유해진다“는 확고한 신념과 “인간은 부유해야 비로소 명예와 염치를 안다”로 요약되는 富에 대한 그의 예리한 성찰은 현대에서도 금과옥조로 남아있다. - 2화 예고 : 춘추전국시대 마지막 패권의 종지부 '범려(范蠡)'와 자공(子貢)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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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7
  • 인간 내면의 움크린 욕망 '부(富)'을 마주한다
    연재에 부쳐 서양에 마키아벨리가 있다면 동양에는 사마천이 있다. 둘 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의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서 때로는 찬사를 또 때론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그 생명력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와 닿는다. 특히 사마천은 부(富)역시 인간 본성과 욕망의 문제이며, 신분과 권력의 상관관계에서 해석하였다. 사마천 개인도 친구를 옹호하다가 역린(逆鱗)을 건드려 속죄금을 낼 돈이 없어 궁형(宮刑)의 치욕을 겪었다. 때문에 자신의 아픔을 딛고 쓴 <사기(史記)> 10대 명편인 ‘화식열전(貨殖列傳)’에는 출신 성분이 아주 낮은 노예, 목장주인, 과부, 재상, 책사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재산을 불려 개인의 행복과 권세를 누린 사례를 예증하면서 ‘부’가 얼마나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키는지 파고들었다. 사마천은 제아무리 신분이 높은 왕이나 제후나 대부들도 늘 ‘가난을 근심(患貧)’했으니, 일반 서민의 근심은 당연하다고 보았다. 士農工商의 신분질서 의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사마천은 아껴 쓰고 부지런히 생업에 힘쓰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빈부 격차가 벌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교묘한 재주를 지닌 자는 돈이 많고 꾀가 없는 자는 돈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일정한 수익창출만 하는 농업이나 공업보다는 변동성이 많아 자산 가치 확장성이 큰 상업을 최고의 위치에 두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기이함을 활용하여 승리했다(富者必用奇勝)”고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했다. 이제 화식열전의 대문을 열고 편안하게 나의 내면에 움크리고 있는 욕망을 마주볼 시간이다.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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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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